시조 : 명옥진(明玉珍)
시조 명옥진(明玉珍)은 원나라 말에 촉(蜀)에 살다가 윈난(雲南)을 공격, 함락시켜 하(夏)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선정을 베풀다가 1366년에 죽고 아들 명승(明昇)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1371년 명나라 주원장(朱元璋)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굴복하였다.
이듬해 명승이 남녀 27명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화하자 공민왕이 그에게 양현을 주고 송도(松都)에서 살게 함으로서 우래나라에 명씨가 생기게 되었다. 그후 조선개국후 태조가 예를 갖추어 화촉군에 봉하고, 태종때 충훈세록을 내렸다. 후손들이 명옥진을 시조로하고 그가 나라를 세우고 황제로 있었던 중국의 서촉을 본관으로 하였다.
황해도(黃海道) 연안(延安) 은 자헌공 명의(明儀)의 후손들이 뿌리를 내렸던 지역으로 선조의 유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여 일부에서는 아직도 본관을 연안(延安)으로 쓰고 있으나 1986년에 간행된 명씨대동보(明氏大同譜)에서는 서촉과 연안의 합본(合本)으로 되어 있다.
- 승(昇)씨도 명승을 시조로 하고 있는 혈손이며 서로 혼인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