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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홍산순씨(鴻山荀氏)

유래

시조 : 순경진(荀慶震)

시조 순경진(荀慶震)은 고려 목종때 진사(進士)를 지냈다.

조선 세조 때 자헌대부(資憲大夫) 도총부(都總府) 도총관(都總管) 사복사정(司僕寺正)을 지낸 순한양(荀漢良)이 퇴임 후 충청도 홍산(鴻山)에 거주함으로써 자손들이 대대로 살게 되었고 따라서 그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병신보(丙申譜)' 등 구보(舊譜)의 발문(跋文)에는 순(荀)씨가 우리나라로 들어와 신라조정에서 우복사(右僕寺)를 지낸 순자안(荀自安)을 원조(遠祖)로 삼고 있다. 그 후대의 상세한 기록이 없어 계대을 밝힐 수 없으나 고려 공민왕 때에 신돈(辛旽)의 난정을 피하여 관직을 삼갔다가 조선시대에 순한양(荀漢良)이 관직에 나감으로써 계대가 분명히 이어지게 되었다.

인물

18세손인 순성걸(荀成傑)은 조중봉(趙重峰)의 문인(門人)으로 선조 때에 진사에 합격, 임진란이 일어나자 조헌(趙憲)의 창의기병(倡義起兵)에 참여, 금산(錦山)에서 순절한 분으로 유명한 금산칠백의총(錦山七百義塚)에 묻혀 있다.

그 아들 순응윤(荀應潤)은 장사랑(將仕郞), 또 그 아들은 인조 때 진사를 했고 22세손인 순성선(荀性善)은 효종 때에 진사를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내려오면 특별한 관환(官宦)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 큰 이유는 유명한 이몽학(李夢鶴)의 난에 연루되어 순(荀)씨가 역족(逆族)으로 몰려 처벌받게 되자 이를 면할 목적으로 대개의 순(荀)씨가 성을 바꿀 수 밖에 없어 씨족이 쇠락하게 된 데에 있는 것 같다.

인구수

1985년 조사
826명
215가구
2000년 조사
842명
252가구
2015년 조사
74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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