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양을나(梁乙那)

제주양씨는 탐라개국설화에 등장하는 세 신인(神人) 중의 한 명인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한다.

탐라(제주의 옛 이름)에는 삼성혈 전설이 있는데,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 맏을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세째를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다. 그들은 수렵을 하여 살았는데, 하루는 바다에 이상한 상자가 떠내려와 건져 보니 세 미녀와 오곡의 종자, 망아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세 신인은 세 미녀와 각각 결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니 그로부터 탐라는 개척되었다.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559년(진흥왕 20년) 신라에 사신으로 예방(禮訪)하니 진흥왕이 많은 상을 내리고 성을 양(梁)으로 하사(下賜)하였다고 한다.

양탕(良宕)의 후손 양순(梁洵)이 682년(신라 신무왕 2년) 신라에 입국하여 국학에 입학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그러나 대신들이 외국인 고관을 꺼려 승진을 못하게 되자 왕이 한라군(漢拏君)에 봉하게 되어 중시조가 되고 본관을 제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