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옹몽진(邕夢辰)
고려시대에 병부상서를 지낸 옹희태(邕羲泰)를 비조로 하여 옹경성(邕慶星), 옹의성(邕義星), 옹명정(邕命廷) 등 여러 상계 조상들이 조선의 개국 때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둔하거나 성을 감추고 있다가 초산(지금의 정읍)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옥천의 향리로 강속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모든 가승과 종적이 실전되었다고 한다.
시조 옹몽진(邕夢辰)은 옹태운의 아들로 1553년(명종 8년) 친경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음성현감을 역임하고 충청도사, 형조좌랑, 예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에 이르러 집안을 다시 세우면서 옹몽진의 증조부이신 옹은(邕誾)을 1세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