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우방녕(于邦寧)
시조 우방녕(于邦寧)은 고려 인종과 의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그후 그의 아들 우학유(于學儒)가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로부터 난을 일으키고 거사에 가담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무신이 권력을 잡아 잘 된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거절했다. 정중부가 집권한 후 그는 신상이 위태로왔으나 집권층인 이의방(李義方)의 누이와 결혼한 인척관계로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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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우방녕(于邦寧)
시조 우방녕(于邦寧)은 고려 인종과 의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그후 그의 아들 우학유(于學儒)가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로부터 난을 일으키고 거사에 가담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무신이 권력을 잡아 잘 된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거절했다. 정중부가 집권한 후 그는 신상이 위태로왔으나 집권층인 이의방(李義方)의 누이와 결혼한 인척관계로 무사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우술유(于述儒)가 명종 때 형부 시랑(刑部侍郞)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금(金)나라에 다녀왔으며, 신종이 즉위하자 판형부사(判刑部事)를 거쳐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에 이르렀다. 한편 희종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내고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던 우승경(于承慶)은 권신 최충헌(崔忠獻)을 제거하려다 되말려 유배당했으며, 우필흥(于必興)은 공민왕 때 옥룡기(玉龍記)의 도참설을 인용하여 문무백관(文武百官)의 의관과 여자들의 옷을 검은색으로 입게하고, 산에 나무를 심게하여 풍토(風土)를 순응케 하라는 소(疏)를 올려 이를 시행케하여 명망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