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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목천우씨(木川于氏)

유래

시조 : 우방녕(于邦寧)

시조 우방녕(于邦寧)은 고려 인종과 의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그후 그의 아들 우학유(于學儒)가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로부터 난을 일으키고 거사에 가담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무신이 권력을 잡아 잘 된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거절했다. 정중부가 집권한 후 그는 신상이 위태로왔으나 집권층인 이의방(李義方)의 누이와 결혼한 인척관계로 무사했다.

인물

대표적인 인물로는 우술유(于述儒)가 명종 때 형부 시랑(刑部侍郞)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금(金)나라에 다녀왔으며, 신종이 즉위하자 판형부사(判刑部事)를 거쳐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에 이르렀다. 한편 희종 때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내고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던 우승경(于承慶)은 권신 최충헌(崔忠獻)을 제거하려다 되말려 유배당했으며, 우필흥(于必興)은 공민왕 때 옥룡기(玉龍記)의 도참설을 인용하여 문무백관(文武百官)의 의관과 여자들의 옷을 검은색으로 입게하고, 산에 나무를 심게하여 풍토(風土)를 순응케 하라는 소(疏)를 올려 이를 시행케하여 명망을 떨쳤다.

인구수

1985년 조사
1,270명
282가구
2000년 조사
3,264명
1,047가구
2015년 조사
46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