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예천권씨(醴泉權氏)

유래

시조 : 흔적신(昕迪臣)

예천권씨는 본래 성씨는 흔(昕)씨로 선대는 예천지방의 호족으로 호장을 세습했다.

시조 흔적신(昕迪臣)은 고려중엽 보승별장을 지냈으며, 그는 안동권씨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그의 3세손과 5세손인 흔승단(昕昇旦)은 모두 안동권씨 집안으로 장가를 갔으며, 그러다 예빈경(禮賓卿)을 역임한 6세손 흔섬(昕暹. 자는 명종)대에 이르러 고려 29대 충목왕이 등극하였는데 충목왕의 이름이 바로 흔(昕)이어서 임금의 이름을 임금 이외사람은 쓰지 못하게하는 동양 전제왕권의 관례에 따라 흔섬은 성씨를 바꿔야 했다.이때 흔섬은 흔적신의 처가성이자 3세와 흔승단의 처가성이기도 한 권씨를 새로운 성으로 정하여 권섬(權暹)이라 하고 본관은 시조의 세거지인 예천으로 하였다.

인물

예천권씨은 득성초기부터 후손이 귀했다. 6세 권섬이 3 형제를 두었으나 첫째와 둘째가 후손을 두지 못해 세째 권군(權群)이 대를 이었다.

그의 아들 권맹손(權孟孫)은 고려 공민왕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당시의 문장가로 을 남겨 가문을 빛냈지만 그도 후손을 두지 못해 아우 권유손(權幼孫)의 두 아들이 대를 잇는다.

둘째 권선(權善)이 선대에 드물게 권오행(權五行), 권오기(權五紀), 권오복(權五福), 권오륜(權五倫), 권오상(權五常) 5형제를 두고 이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에 올라 가문이 번창하여 조정에서는 예천권씨 집안을 오복문(五福門)이라 일컬었다. 이들 5형제중 권오복은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권오복은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아 조선 성종17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관에 뽑혔다.

그의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부귀공명에 연연하지 않은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는 8세손 권문해(權文海)에게 이어졌다. 그는 일찌기 퇴계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영남학파의 주류로 예천권씨의 명성을 일으켰다. 1552년(명종 7년) 문과에 급제한 그는 정언, 승지를 지내고 외직으로는 대구,공주,청주목사를 거쳤는데 가는곳마다 올바른 정사를 펴서 선정비가 세워 졌다.

그가 대구목사로 있을때 단군이래 조선 선조 때 까지의 우리역사와 문화예술풍속 등을 총망라하여 107가지 운으로 분류, 저술한 전20권을 편찬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오늘날 목판본 677매만 전해지고 있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17世
환(煥)위치 미표기
18世
재(載)위치 미표기
19世
현(鉉)위치 미표기
20世
승(承)위치 미표기
21世
식(植)위치 미표기
22世
광(光)위치 미표기
23世
수(壽)위치 미표기
24世
진(鎭)위치 미표기
25世
구(求)위치 미표기

인구수

1985년 조사
5,275명
1,137가구
2000년 조사
4,876명
1,512가구
2015년 조사
4,5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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