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봉산지씨(鳳山智氏, 봉주)

유래

시조 : 지채문(智蔡文)

시조 지채문(智蔡文)은 고려 때의 명장으로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군이 내침했을 때 많은 전공을 세웠고, 또 왕의 피난길을 호종하여 신변의 위기를 막아 난이 평정된 후 공으로 토지를 하사받고 무관으로서 우상시(右常侍)를 겸직했다. 후에 상장군(上將軍),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덕종이 즉위하자 일등공신에 추록되었으므로,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봉산(鳳山 : 봉주의 별호)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인물

시조 지채문의 증손 지녹연(智祿延)은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음보로 벼슬에 올라 동북면 병마판관(兵馬判官)을 지냈고 1104년(숙종 9)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워 전중사어사(殿中寺御史)가 되었으며, 예종 때 내시지후를 거쳐 경상도 안무사(按撫事)·동북면 병마사(兵馬使) 등을 역임한 후 1125년(인조 3) 동지중추밀원사(同知中樞密院事)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묘호란 때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지득남(智得男)은 선천 부사(宣川府使) 기현의 별장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능한산성에 들어간 뒤 전세록·김여간, 계숭로, 임여택 등과 함께 선천의 월봉에서 천 여명의 의병을 모아 적을 대파하였으므로 이름이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인구수

1985년 조사
2,894명
713가구
2000년 조사
6,098명
1,903가구
2015년 조사
5,751명

같은 성씨의 다른 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