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판씨의 선조는 고려 말엽에 충신으로서 왕을 보필하는 관직에 있었으나 간신배의 모함을 받아 반역의 누명을 쓰고 강화도 근처의 섬으로 유배 도중에 풍파를 만나 배가 파선이 되어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한강 하류에 있는 밤섬에 도착하여 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살고 있는 판영호(判榮鎬)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마포구 율도동(栗島洞, 밤섬)에 살고 있었던 종손 판봉석(判鳳石)이란 사람이 대대로 전해오던 보첩(譜牒)을 보관하다가 1925년 대홍수로 밤섬 전역이 침수되었을 때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67년도에 밤섬에 살고 있었던 후손들은 정부시책에 따라 마포구 와우산 중턱에 옮겨 살다가 점차 전국 각처로 이사를 가고 지금은 몇가구 남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 처음 밤섬에 정착했던 선조의 이름을 판해율(判海栗)로 존모(尊慕)하고, 전국에 흩어진 후손들이 단결하여 족보 편찬을 서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