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팽적(彭逖)
시조 팽적(彭逖)은 중국 금릉(金陵) 사람으로 1351년(고려 충정왕 3년) 원나라 노국공주가 공민왕과 결혼하여 입국할때 내각학사(內閣學士)로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용강백(龍岡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용강으로 하였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팽적(彭逖)
시조 팽적(彭逖)은 중국 금릉(金陵) 사람으로 1351년(고려 충정왕 3년) 원나라 노국공주가 공민왕과 결혼하여 입국할때 내각학사(內閣學士)로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용강백(龍岡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용강으로 하였다.
팽적(彭逖)의 손자 팽조(彭祖)가 조선에서 판중추부사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팽양은 대사헌(大司憲)에 올라 크게 명성을 날림으로써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팽성(彭誠)은 팽양의 손자이며, 팽성의 아들 팽정현(彭汀顯)은 어모장군에, 팽성의 손자 팽호(彭湖)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올랐다. 그 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팽봉서(彭鳳瑞)와 상호군을 역임한 팽순(彭淳), 팽경대(彭敬大)가 유명했으며, 군자감정을 지낸 팽윤대(彭潤大)는, 공조참의를 역임한 팽지근(彭只根), 호조참판을 지낸 팽봉혁(彭鳳爀)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