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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홍천피씨(洪川皮氏)

유래

시조 : 피위종(皮謂宗)

시조 피위종(皮謂宗)은 원나라에서 금오위 상장군(金吾衛上將軍)을 역임했다. 고려 충렬왕 때 동국안렴사(東國安廉使)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풍물에 정이 들어 귀화하자 충렬왕(忠烈王)이 크게 기뻐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을 제수(除授)하였고, 뒤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추증되었다. 그의 맏아들 피인선(皮寅善)이 정당문학(政堂文學)․ 좌복야(左僕射) 등을 지낸 후 홍천군(洪川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홍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원래 피씨는 주나라 경사인 번중피의 제일 아랫자인 피를 따서 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물

피인선의 아들 피맹문(皮孟文)이 승지를 지냈고, 손자 피원휴(皮元休)는 한림학사(한림원에 속하는 정4품 관직)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고려 말에 순창 현령으로 나간 피원량은 재임기간 동안 왜구 방비에 공헌하여 크게 이름을 날렸다. 조선 헌종 때 학자로 유명한 피병추는 학문이 깊고 문장에 뛰어나 명망이 높았다.

- 피인선(皮寅善) 고려 때 좌복야를 역임하였다.

- 피인고(皮寅古) 고겨 때 평장사를 역임하였다

- 피맹문(皮孟文) 고려 때 승지를 지냈다.

- 피맹인(皮孟仁) 고려 때 직학사를 지냈다.

- 피원휴(皮元休) 고려 때 한림학사를 역임하였다.

- 피자휴(皮子休) 고려 때 상서를 지냈다.

- 피원량(皮元亮) 고려 때 현감을 역임하였다.

- 피재구(皮栽九) 조선 때 참의 지냈다

- 피영기(皮永基) 조선 때 사성을 지냈다

- 피연길(皮然吉) 조선 때 참의를 역임하였다

- 피세숙(皮世塾) 조선 때 한성판윤을 지냈다.

인구수

1985년 조사
1,265명
312가구
2000년 조사
1,143명
374가구
2015년 조사
84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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