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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하양허씨(河陽許氏)

유래

시조 : 허강안(許康安)

시조 허강안(許康安)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 허황후(許黃后)의 33세손이다. 고려 현종때 호부 낭장(戶部郞將)을 역임하고 말년에 호장(戶長)을 지내고 하주(河州) 척리(刺吏)가 되었다. 그래서 본관을 하주라 하였는데 한때는 지명이 화성(花城), 하양 등으로 변경되어 하양을 본관으로 하고있다.

인물

허강안의 손자 허작린(許綽麟)이 고려에서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냈으며, 증손 허신(許愼)은 호부주사(戶部主事), 동정(同正)등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개성 부윤(開城府尹) 허귀룡(許貴龍)의 아들 허주(許周)는 우왕때 지양 주사(知陽州事)가 되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구축했고, 조선이 개국한후 한성부윤(漢城府尹), 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낸 후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司留後),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냈다.

허주(許周)의 동생 허조(許稠)는 권근(權近)의 문하에서 글을 일고 공양왕(恭讓王)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조선 세종 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라 치사(致仕)했다. 경사(經史)에 밝았던 허성(許誠)은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허주(許周)의 아들로, 예조(禮曹)와 이조(吏曹)의 판서(判書)를 역임하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재냈다.

허조(許稠)의 아들 허후(許珝)는 문종 때 형조판서(刑曹判書)로 세종실록(世宗實錄)편찬에 참여했고, 단종 때 좌찬성(左贊成)이 되어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등과 함께 문종의 유명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데 앞장섰으며,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이를 개탄하여 고기를 먹지 않아 의심을 받다가 거제도(巨濟島)에 유배되어 죽음을 당했다. 그 외 중추원 부사(中樞院府使) 허척(許倜)의 아들 허계(許誡)는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下賜)받았으며, 병조참의(兵曹參議)를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빛냈다.

인구수

1985년 조사
14,789명
3,596가구
2000년 조사
16,344명
5,081가구
2015년 조사
20,60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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