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화명신(化明臣).

시조는 화명신(化明臣)은 중국 명(明)나라 사람으로 조선 중엽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귀화했다. 낭야(瑯琊) 사람인 그는 명나라 중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본래의 성은 화(花)씨이며 본래의 이름은 화광신(花光新) 였다고 한다.

만주의 여진족이 강성해지면서 북경을 점령한 청군(淸軍)이 낭야(瑯琊)에까지 밀려들자 화명신(化明臣)은 "어진 사람은 기회를 알고 행(行)한다"며 '예의의 나라' 조선으로 일가를 이끌고 망명했다. 멀리 광주(廣州) 교외의 소영대(沼靈臺)에 터를 잡고 정착, 이름도 성도 숨기고 살았다. 조선 성종 때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다. 성종은 "중국의 화(花)씨가 조선국에 귀화한 것은 향화(向化)의 의리"라며 "化"자를 성으로 내렸다. 화(花)씨가 화(化)씨가 된 연유다. 경성군(慶城君)이라 봉해진 그는 도승지(都承旨)에 기용됐다. 그러나 화(化)씨는 득성(得姓) 시조 이후 사성보첩(賜姓譜牒)을 잃었다. 헌종 때 후손들이 안동부(安東府)에 보존돼 있는 족보를 가까스로 찾아냈으나 원본이 크게 훼손돼 정확한 선계(先系)를 밝히지는 못하고 화명신(化明臣)의 6대손으로 알려진 화섭(化燮)을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