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배맹달(裵孟達)
시조 배맹달(裵孟達)은 달성군 배운룡(裵雲龍)의 13세손으로 조선 세조13년(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서훈되고, 병조판서에 특진되었으며 서강군에 봉해졌다가 곤산군에 개봉(改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달성배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곤양으로 삼게 되었다. 곤산은 곤양의 옛 지명이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배맹달(裵孟達)
시조 배맹달(裵孟達)은 달성군 배운룡(裵雲龍)의 13세손으로 조선 세조13년(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서훈되고, 병조판서에 특진되었으며 서강군에 봉해졌다가 곤산군에 개봉(改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달성배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곤양으로 삼게 되었다. 곤산은 곤양의 옛 지명이다.
배맹달(裵孟達)의 아들 4형제가 현달했고, 그의 후대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가세가 크게 융성하기 시작했다.
배맹달의 맏아들 배숙흥(裵叔興)은 조선시대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거쳐 진주 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둘째 배사종(裵嗣宗)은 양지 현감을 역임했으나 연산군의 난정이 계속되자 벼슬의 뜻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배숙흥의 손자 배언구(裵彦矩)는 주부(主簿)를 지냈고, 그의 아우 배언손(裵彦孫)은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임진왜란때 순절한 배치례(裵致禮)의 아들 배언필(裵彦弼)은 선전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