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왕국조(王國祖)
중국 황제 헌원씨의 17세손 조명이 유누와 함께 우리나라에 와서 지금의 평양 일토산 아래에 정착하였다. 그후 조명의 후손 수극이 기자가 왕이 되었을 때 왕씨 성을 하사 받았다. 그후 수극의 57세손 왕염의 13세손 왕몽으로 이어져 왔는데 왕몽은 신라 건국초기에 시중을 지냈다. 당시 비결에 '토초가위왕'이라 하였으므로 그 화가 미칠까 두려워 왕몽이 일곱째 아들 왕림(王琳)을 데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10여년 동안 수도하면서 전, 신, 차씨 등으로 성을 바꾸었고 차무일이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한다. 차무일의 셋째 아들 왕식시의 후손이 왕건이다.
왕건(王建, 877~943)은 송악(개성) 사람으로 901년 궁예가 신라에 반기를 들고 후고구려를 세우고 왕이되었을 때 궁예를 도와 913년 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지 몇년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기장이었던 신숭겸, 배현경 , 유금필, 홍유 등이 왕건에게 왕창근, 송합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궁예를 추출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한 후 삼국을 통일하고 473년동안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개국하면서 멸족를 당하게 되자 옥(玉), 금(琴), 마(馬), 전(田), 전(全), 김(金)씨 등의 다른 성으로 행세하며 숨어 살면서 혈통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정조 때에 비로소 문헌 등을 조사하여 왕씨로 다시 성을 바꾸어 세보를 만들고 왕건이 수도로 정한 송도(개성)을 본관으로 하고 왕원(王垣)을 1세 조상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