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교동인씨(喬桐印氏)

유래

시조 : 인서(印瑞)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인 교동인씨(喬桐印氏)는 좌씨전(左氏傳)과 계고집성(稽古集成)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정(鄭)나라 목(穆)의 증손 가운데 인단(印段)이 조부의 이름인 자인(子印)의 인(印) 자를 따서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시조 인서(印瑞)는 중국 사람으로 진(晉)나라 풍익(馮翊) 땅에서 대부(大夫)라는 벼슬을 하다가 300년(신라 기림왕 3년) 사신으로 신라에 들어 왔다가 정착하여 살면서 아찬의 벼슬지냈다. 그의 후손 인빈(印份, 33세손)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 현재 교동) 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하였다.

그러나 인빈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후손 인당(印璫)을 중시조로 하였다. 인당은 고려 공민왕때 서북면 병마사로서 압록강 서쪽의 파사부(婆娑府) 등 삼참(三站)을 공략하고 개척한 공으로 참지정사에 올랐다.

- 인당의 묘소는 개성시에 있다.

인물

인당의 아들 인안(印安)이 전리 판서를, 인해(印海)가 이부시랑을 지냈다. 손자 인원보(印原寶)가 서북면 체찰사, 인중보(印重寶)가 상장군을 각각 역임했다. 대장군을 지낸 인저(印著)와 절충장군 인철관(印鐵寬), 선략장군으로 임진왜란 때 정난원종 이등공신에 오른 인발(印潑), 도총부 부총관 인이헌(印以憲), 참판을 역임한 인명조(印明朝), 인근영(印瑾永), 인석신(印錫信), 인상혁(印相赫) 등이 가문을 빛냈다.

- 인원보(印原寶, ? ~ 1388년) : 43세손. 1379년(우왕 5) 서북면체찰사(西北面體察使)를 역임하고, 1388년(고려 우왕 14)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르렀다.

- 인석보(印錫輔, 1852년 ~ 1896) : 1892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등을 지내고 규장각 부제학(奎章閣副提學)에 추증되었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64世
○교(敎)
64世
○돈(敦)
65世
병(秉)○
65世
용(庸)○
66世
연(演)○
66世
주(胄)○
67世
○경(卿)
67世
○영(迎)
68世
진(震)○
68世
신(晨)○
69世
○범(範)
69世
○희(熙)
70世
준(準)○
70世
오(旿)○
71世
○동(東)
71世
○래(來)
72世
중(重)○
72世
연(連)○
73世
○연(連)
73世
○순(醇)
74世
성(成)○
74世
기(璣)○
75世
○하(夏)
75世
○복(馥)

인구수

1985년 조사
17,558명
4,140가구
2000년 조사
17,448명
5,403가구
2015년 조사
20,73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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