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인서(印瑞)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인 교동인씨(喬桐印氏)는 좌씨전(左氏傳)과 계고집성(稽古集成)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정(鄭)나라 목(穆)의 증손 가운데 인단(印段)이 조부의 이름인 자인(子印)의 인(印) 자를 따서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시조 인서(印瑞)는 중국 사람으로 진(晉)나라 풍익(馮翊) 땅에서 대부(大夫)라는 벼슬을 하다가 300년(신라 기림왕 3년) 사신으로 신라에 들어 왔다가 정착하여 살면서 아찬의 벼슬지냈다. 그의 후손 인빈(印份, 33세손)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 현재 교동) 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하였다.
그러나 인빈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후손 인당(印璫)을 중시조로 하였다. 인당은 고려 공민왕때 서북면 병마사로서 압록강 서쪽의 파사부(婆娑府) 등 삼참(三站)을 공략하고 개척한 공으로 참지정사에 올랐다.
- 인당의 묘소는 개성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