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옥천전씨(沃川全氏)

유래

시조 : 전학준(全學俊)

시조 전학준(全學俊)은 도시조 전섭의 23세손으로 영동정(領同正)을 역임했으며, 그의 5세손 전유(全侑)가 고려에서 밀직부사(密直副使), 판도판서(版圖判書), 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내고 관성군(管城君, 현재의 옥천)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정선에서 분관하여 옥천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인물

고려조 대호군(大護軍)을 지낸 전필(全弼)을 비롯하여 판도판서를 지낸 전유(全侑), 이부전서(吏部典書)의 전광운(全光韻), 진의부위(進義副尉)의 전의(全義), 그리고 부제학을 지낸 전지(全智) 등을 배출하였다.

한편 전명룡(全命龍)은 조선 인조 때의 인물로서 1627년 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그는 도학과 문장이 뛰어나 후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옥천의 봉양서원, 영주의 방산사(方山祠)에 제향되고 있다.

또 전익희(全益禧)는 1624년 문과에 급제, 정언(正言)을 거쳐 1641년 지평(持平)을 역임, 선산부사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전희철(全希哲)은 단종 때 벼슬이 상장군에 올랐으나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 임종 때 아들에게 1 년에 한번씩 영월에 찾아가 단종능에 참배하도록 당부했다.

선조대의 인물인 전식(全湜)은 1589년 진사가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많은 왜적을 죽이고, 강원도 찰방이 되었다. 1603년 문과에 급제, 병조참지를 거쳐 이조참의, 대사간에 올랐으며, 1642년 지중추부사, 동지경연사, 동지춘추관사에 이르렀다.

전극항(全克恒)은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나 이름을 떨쳤고 1624년 문과에 급제, 운문관 검열(芸文館 檢閱)을 거쳐 예조정랑에 올랐으며 병자호란 때 순절했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26世
우(愚)위치 미표기
27世
구(九)위치 미표기
28世
병(丙)위치 미표기
29世
기(基)위치 미표기
30世
용(鎔)위치 미표기
31世
우(雨)위치 미표기
32世
상(相)위치 미표기
33世
섭(燮)위치 미표기
34世
정(廷)위치 미표기
35世
호(鎬)위치 미표기
36世
영(泳)위치 미표기
37世
주(柱)위치 미표기
38世
환(煥)위치 미표기
39世
채(埰)위치 미표기
40世
진(鎭)위치 미표기
41世
철(澈)위치 미표기
42世
계(桂)위치 미표기
43世
영(榮)위치 미표기
44世
규(圭)위치 미표기
45世
태(兌)위치 미표기
46世
호(浩)위치 미표기
47世
병(秉)위치 미표기
48世
형(炯)위치 미표기

인구수

1985년 조사
37,380명
8,981가구
2000년 조사
43,920명
13,556가구
2015년 조사
47,68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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