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전집(全潗)
시조 전집(全潗)은 도시조 전섭(全攝)의 30세손으로 시호는 충정이다. 전집은 1361년(고려 공민왕 10) 중랑장으로 두차례에 걸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난공신(推忠靖扈亂聖功臣)이 되어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지고 그후 삼중대광첨의 문하시중 평장사(三重大匡僉議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완산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전집(全潗)
시조 전집(全潗)은 도시조 전섭(全攝)의 30세손으로 시호는 충정이다. 전집은 1361년(고려 공민왕 10) 중랑장으로 두차례에 걸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난공신(推忠靖扈亂聖功臣)이 되어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지고 그후 삼중대광첨의 문하시중 평장사(三重大匡僉議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완산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전치원(全致遠)은 1606년(선조 39) 사헌부감찰,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를 거쳐 춘추관기사관으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는 서예와 성리학에 능통했고 저서로는 임진난이록(壬癸亂離錄)이 전한다.
전우(全雨)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공을 세우고 중임도찰방(重林道察訪)에 발탁되었으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전형(全鎣)은 서예로 일가를 이루었고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 통신사 임광(任侊)을 수행, 일본에 건너가서 글씨로 이름을 떨쳤으며, 1647년(인조 25) 김해의 가락국 김수로왕(駕洛國金首露王) 비문을 썼다. 저서로는 "해사일기"가 전한다.
전준은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각처에서 많은 적을 죽이고 삼학진(三鶴陣)에서 왜병의 기습을 받아 역전하다가 순절하였다. 1638년 8읍 사림이 장문(狀文)을 연정하여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또한 전문도 난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각처에서 공을 세우다 순절하였다.
그리고 전홍칠(全弘七)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공양에 극진하였는데 15세 때 부친의 상을 당하여 아우 전홍팔(全弘八)과 함께 여막에서 거상(居喪)하니 범이 와서 호위해 주었고, 용천(涌泉)이 출중하였다.
전두환(全斗煥) :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재임 1980~1988)을 지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