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정진(丁晋)
시조 정진(丁晋)은 고려 때 태학생원(太學生員)을 지냈다. 정진은 정덕성(丁德盛)의 큰아들 정열도(丁烈道)의 후손이다.
정진의 손자 정찬(丁贊)이 공민왕 때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성을 본관으로 삼게되었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정진(丁晋)
시조 정진(丁晋)은 고려 때 태학생원(太學生員)을 지냈다. 정진은 정덕성(丁德盛)의 큰아들 정열도(丁烈道)의 후손이다.
정진의 손자 정찬(丁贊)이 공민왕 때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성을 본관으로 삼게되었다.
정극인(丁克仁)은 145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에 이르렀으나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사직하고서 태인(泰仁)에 가서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그 공으로 3품교관(品敎官)이 되었다. 문학에도 특출한 재능을 나타내어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가사(歌辭) 작품인 "상춘곡(賞春曲)"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