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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경주정씨(慶州鄭氏)

유래

시조 : 지백호(智伯虎)

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진지촌(珍支村)의 촌장이다.

시조(중시조) 문정공 정진원(鄭珍原)은 지백호의 42대 손으로 고려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평장사(平章事) 등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고 월성(경주의 옛이름)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다.

경주정씨가 전체 정씨(鄭氏)의 큰집 격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소는 경북 월성군 내남면 로곡리에 있으며 음력 10월 10일에 향사한다.

인물

고려시대의 인물로는 정극온(鄭,정이기(부마), 정현영(鄭玄英. 호부상서), 정휘(鄭暉. 문하평리)) 등이 고려사에 올라있다. 정휘의 아들인 양경공(良景公) 정희계는 이성계의 조선개국에 참여, 조선이 들어서자 개국공신 1등으로 봉해지고 좌참찬,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들어 경주정씨는 15명의 문과급제자 30명의 무과급제자를 배출했다.

정희계(鄭熙啓)가 잘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전사한 정발(鄭撥)은 정희계의 5대 손인 군수 정명선(鄭明善)의 아들이다. 이 밖에 세종 때 좌찬성이 추증된 정지년(鄭知年), 명종 때 성리학의 대가 정지운(鄭之雲)을 들 수 있다.

임진왜란 벽두에 장렬하게 전사한 유명한 흑의장군 정발(鄭撥)은 25살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 훈련원부정을 역임. 임진왜란이 나기 직전에 부산진 첨절제사가 되었는데, 그해 4월 왜군이 처음으로 부산에 상륙하자 다른 장수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그는 끝까지 분전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항상 검은 군복을 입고 진두에 나서 군민을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에 왜병들이 "흑의장군"의 명칭을 붙였다. 장군의 용전사실은 왜란이 끝난 후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황신(黃愼)이 왜군 平調信(평조신)으로부터 무용을 극찬하는 회고담을 듣고 돌아와 조정에 알려져 뒤늦게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사당 충렬사(忠烈祠 : 부산 동래구 안락동)을 지어 배향했다.

인구수

1985년 조사
300,808명
70,670가구
2000년 조사
303,443명
94,465가구
2015년 조사
350,58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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