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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초계주씨(草溪周氏)

유래

시조 : 주황(周璜)

주씨는 중국 주나라의 왕손으로 주나라가 망한 후에 후손들이 성을 주씨라 하게 되었다 한다.

후손 주황(周璜)이 당나라 말에 한림학사로 있다가 신라 효공왕 11년 "오계의 난(五李之亂)"을 피하여 변(卞), 정(鄭) 두학사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초계 지방에 살았으므로 주황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초계로 하였다.

초계주씨 족보에 의하면 주황의 후손에서 상주(14세손), 장흥(12세손), 삼계(12세손), 함안(12세손), 안의(13세손) 등으로 본관이 나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종친회의 주장은 이와는 다르다.

인물

고려시대에 예부상서를 지낸 주세후(周世侯)를 비롯하여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를 지낸 주호(周鎬), 평장사를 지낸 주렴(周濂), 호조판서를 지낸 주원의(周原義) 등 여러 관직자들을 배출하면서 번영하였다. 특히 주형에 이르러서는 초계주씨 가문에 번영을 더하였는데 그는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예의판서를 지냈으며 조선이 개국되고 태조가 형조판서를 임명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주희(周禧)는 공조판서를 지냈고, 주세흥(周世興)은 호조참판을 지냈는데 중종 때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으로 금성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주몽득(周夢得)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추령에서 왜적을 나무로 만든 활로 대파했다.

인구수

1985년 조사
6,331명
1,493가구
2000년 조사
6,665명
2,026가구
2015년 조사
8,7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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