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진보재(陳普才)
시조 진보재(陳普才)는 본래 중국 양산(梁山) 사람으로, 원나라 때 면양에 살다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불사하고 양덕산으로 은거하였다. 그 후 명나라 태조 때 승상(丞相)에 추증되어 문렬이란 시호를 하사받았으며, 손자 진리(陳理)가 고려에 들어오자 공민왕이 전답과 노비를 내리고 평한군에 봉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선조의 고향인 양산(梁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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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진보재(陳普才)
시조 진보재(陳普才)는 본래 중국 양산(梁山) 사람으로, 원나라 때 면양에 살다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불사하고 양덕산으로 은거하였다. 그 후 명나라 태조 때 승상(丞相)에 추증되어 문렬이란 시호를 하사받았으며, 손자 진리(陳理)가 고려에 들어오자 공민왕이 전답과 노비를 내리고 평한군에 봉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선조의 고향인 양산(梁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 진보재의 8세손 진홍범(陳弘範)의 아들 진봉의(陳鳳儀)가 종인부의 의빈(儀賓)이었고, 통덕랑 진복천(陳僕千)의 아들 진세진(陳世珍)은 부호군을 역임하였으며, 통덕랑을 지낸 아우 진세호(陳世浩), 부호군을 역임한 진세억(陳世億)이 있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 외 세억의 증손인 진지창(陳智昌)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 만호(萬戶)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