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최익후(崔益厚)
시조 최익후(崔益厚)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상서우복야, 정당문학을 지내고 강화에 살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강화로 하였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최익후(崔益厚)
시조 최익후(崔益厚)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상서우복야, 정당문학을 지내고 강화에 살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강화로 하였다.
- 최용소(龍蘇) : 고려시대에 공조전서(工曹典書) 등을 지냈고, 조선 태조 때에는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본국인 570명을 데리고 나왔으며,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 都摠官)을 거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태조로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의 칭호를 받았다.
- 최순(淳) : 중종 때 대사간을 지냈다.
- 최시성(時聖), 최희립(希立) : 선조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웠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