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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의흥박씨(義興朴氏)

유래

시조 : 박을규(朴乙規)

시조 박을규(朴乙規)의 본래 성은 왕(王)씨로 고려 말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을 하자 정치적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춘성(春城, 현재 단양군 영춘면 거의동)에 은둔하였다가 조선 태종 때 외가의 성인 박씨를 따랐다. 그 후 후손들은 본관을 의흥(義興)으로 하였으나, 중간 계대(系代)가 실전(失傳)되어 후손인 박득서(朴得瑞)로부터 대(代)를 이었다. 박득서의 벼슬은 운산유학교도였다.

문헌상의 인물로는 1672년(조선 현종 1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군수를 지낸 박수검(자는 양백, 호는 임호)이 있으며 그는 박임호의 아들로 제천에서 살았다.

1930년 국세조사 때 경북 군위군 악계면에 26가구, 의흥면에 149가구, 충북 제천군 금성면 구룡리에 40가구가 살았다.

인물

시조 박득서(朴得瑞)의 아들 박근(朴瑾)은 1453년(단종 1년) 종사랑으로 청풍유학교도로 있으면서 문과 을과에 올랐다. 세조의 등극 때 공을 세워 한확, 최항 등과 함께 참좌익훈으로 책록되었다.

박임호(朴林湖)의 아들 박수검(朴守儉)은 1672년 별시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학록(學錄), 학정(學正), 전적 등을 거쳐 예조좌랑, 호조정랑을 지냈다. 외직으로는 무장(茂長), 정천(定川)의 현감을 역임하고, 다시 내직의 통례원좌통례에 이르렀다. 제천(堤川)에서 살았으며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이다.

인구수

1985년 조사
3,970명
981가구
2000년 조사
3,395명
1,046가구
2015년 조사
7,94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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