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창욱(李昌旭)
시조 이창욱(李昌旭)은 본래 홍양(洪陽, 충남 홍성) 출신으로 1414년(태종 14년)에 호남지방에 토적들이 창궐하자 홍양 초토사(招討使)로서 토벌에 공을 세우고 예산전투에서 전사 했다.
조정에서 그 공으로 호남제군 진무대장군(湖南諸郡 鎭撫大將軍)에 추증하고 결주군(潔州君)에 봉했다.
본관은 원래 이성(利城)이었는데 조선 정조 때에 결성으로 고쳤다.
-시조의 묘는 충남 홍성군 은하면 근은리에 있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이창욱(李昌旭)
시조 이창욱(李昌旭)은 본래 홍양(洪陽, 충남 홍성) 출신으로 1414년(태종 14년)에 호남지방에 토적들이 창궐하자 홍양 초토사(招討使)로서 토벌에 공을 세우고 예산전투에서 전사 했다.
조정에서 그 공으로 호남제군 진무대장군(湖南諸郡 鎭撫大將軍)에 추증하고 결주군(潔州君)에 봉했다.
본관은 원래 이성(利城)이었는데 조선 정조 때에 결성으로 고쳤다.
-시조의 묘는 충남 홍성군 은하면 근은리에 있다.
조선시대에 이병율(李秉律)은 이창욱의 아들로 1423년(세종 5년)에 음보로 선전관이 되고 이어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 진주병사를 역임하였다.
이인호(李仁鎬)는 이병율의 둘째 아들로 1429년(세종11) 사마시에 합격, 그후 문과에 급제하고 쌍성도호부사, 충청도 관찰사, 경상도 수군병마절도사 겸 안무사(按撫使)를 역임하였다.
이인호의 둘째 아들 이유산(李裕山)은 1453년(단종 1년)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봉사가 되었으며, 이풍지(李豊枝, 9세손)는 평남 순천군 북창면에 정착하여 결성이씨의 파조가 되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