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전득시(田得時)
시조 충원공 전득시(田得時)의 익호(瀷號)는 충원(忠元)이다.
그는 고려 중엽 때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고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좌복야(左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으며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의 후대에 와서는 10여개의 파로 분류되지만 관향을 담양으로 하는 같은 조상의 자손으로 단일본이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전득시(田得時)
시조 충원공 전득시(田得時)의 익호(瀷號)는 충원(忠元)이다.
그는 고려 중엽 때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고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좌복야(左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으며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의 후대에 와서는 10여개의 파로 분류되지만 관향을 담양으로 하는 같은 조상의 자손으로 단일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문과 급제자 127명, 봉군 15명 판서급 22명, 정승 3 명 등을 배출한다.
시조 전득시의 후손은 6세(世)까지 독자로 내려오다가 7세에 이르러 전녹생(田祿生), 전귀생(田貴生), 전조생(田祖生)의 3형제가 태어났는데 이들이 "삼은전선생(三隱田先生)"으로 이들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고려말의 석학 전조생은 충혜왕이 임종시 어린 두 왕자의 보필, 정사를 처리해 줄 것을 부탁했던 당대의 명 신이요 대문장가였다. 후에 충정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정치가 문란, 이 때문에 찬성사를 끝으로 벼슬을 사양했다. 공민왕이 왕위에 오르자 충정왕을 강화까지 호송하고 은거하다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두문동에 들어가 순절했다.
전우(田愚)는 한말 성리학의 대가로 13 세때 사서삼경을 읽고 20세 안에 초과, 중과 등 양과에 오른 수재 였으며 만년에는 부안의 계화도에 은거, 많은 후진들을 길러냈다. 그 는 우리나라 500년 유문(儒門)의 도통(道統)을 계승한 최후의 대종(大宗)이었다.
영조 때 삼도통제사 등을 지낸면서 병선과 병차를 제작했던 전운상(田雲祥)도 담양 전씨가 배출한 명장이었다. 그가 만든 해골선은 거북선에 필적하는 해전용 철갑선이다.
그밖에 임진왜란 때 왕의 의주 피난길을 도와 호성(扈聖)원종공신에 오른 전윤(田潤)과 전득우(田得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