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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서산정씨(瑞山鄭氏)

유래

시조 : 정인경(鄭仁卿)

시조 정인경(鄭仁卿)의 선조는 중국 금화부 포강현 절강사람 鄭應中(鄭應中)으로서 그는 송나라에서 判將作監(判將作監)을 지냈고 그의 증손 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尙書刑部 員外郞(尙書刑部員外郞)으로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망명하여 서산에 정착하였다.

정신보의 아들이 곧 정인경이다. 그는 1254년(고려 고종 41년) 문과에 급제하고려 충열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머물때 호종했고 그후 1299년(충렬왕 25년)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어 정조사(正朝使)로 원나라에 다녀오고, 도검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거쳐 중찬(中贊)으로 은퇴하였다.

그래서 후손들 이 시조의 정착지인 서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인물

고려때 정신유(鄭信柔)와 정수는 상서(尙書)가 되었으며 정세충(鄭世忠)은 지제교(知製敎) 정달한(鄭達漢)은 수랑장(首郞將)을 지냈다. 또한 정윤홍(鄭允弘)은 군기부정(軍器副正)이 되었고 정윤장(鄭允壯)은 중랑장에 올랐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정순은 판서에 올랐으며 정방형(鄭邦衡)과 정주, 그리고 정성검(鄭成儉)과 정희(鄭僖)는 현감이 되었으며 , 정사인(鄭斯仁)과 정성양(鄭成良)은 군수, 정견은 시평, 정언좌(鄭彦佐)는 판관이 되었고 정내언(鄭耐言)과 정천언(鄭踐言)은 부호군(副護軍)이 되어 가문을 번성시켰다.

정인홍(鄭仁弘)은 선조 때 대북파(大北派)의 영수(領袖)로서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항전하여 영남의병장의 호를 받았고, 대사헌과 동지중추부사, 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또한 정인영(鄭仁榮)은 판관이 되었으며,

정인함(鄭仁涵)은 정랑(正郞), 정의열(鄭義烈)은 중추부사가 되어 이름을 떨쳤고, 정차주(鄭次周)는 효자로서 세상의 귀감이 되었다.

인구수

1985년 조사
13,819명
3,287가구
2000년 조사
15,362명
4,764가구
2015년 조사
18,6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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