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진상(秦商)
진주진씨의 원조는 공자의 제자로 우리나라 문묘에 배향된 진상(秦商)이다.
문헌에 의하면 진상의 후손인 진욱(秦郁)이 고려에서 박사보리공신(博 士輔理功臣)으로 진주군에 봉해졌으므로 그를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진욱(秦郁)의 둘째 아들 진계백(秦季伯)은 고려 공민왕 때 찬성사(贊成事)로서 홍윤, 최만생 등과 정사(政事)를 논하다가 그들이 모반을 계획하자 화를 면하기 위해 제주로 피신하여 거주함으로써 제주 입향조가 되었다.
진계백(秦季伯)의 증손대에서 진인규(秦仁規)를 파조로 하는 판포파와 진인한(秦仁漢)을 파조로 하는 명월파, 진의한(秦義漢)을 파조로 하는 납읍파 등 거주지를 중심으로 크게 3파로 갈라져 세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판포파와 납읍파는 진씨에 관한 문헌을 조사하여 풍기진씨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어 본관을 풍기(豊基)로 정정했다고 하며, 둘째인 명월파는 아직도 진주를 본관으로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