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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풍기진씨(豊基秦氏)

유래

시조 : 진필명(秦弼明)

시조 진필명(秦弼明, 624~?)은 당나라 고종때에 병부 시랑(兵部侍郞)을 지냈다.

진필명은 어려서부터 지용과 지기가 뛰어났으며, 660년(신라 무열왕 7) 소정방 등과 함께 나당 연합군의 장수로 참전하여 백제를 공략, 멸망시켰고 신라에 귀화하여 우리나라 진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진필명의 15세손 진질명(秦礩溟)이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으로 정중부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기주(基州)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본관을 풍기로 하였다.

- 후대에서 삼척(三陟)과 영춘파(永春派)로 분관되었다고 한다.

인물

보승장군 진원의 아들 진효정(秦孝貞)이 고려 충선왕 때 문과에 장원하여 봉승랑(奉承郞)을 거쳐 중문지후(中門祗侯)를 지냈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아들 진중길(秦中吉)이 권부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통직랑(通直郞)을 지낸 후 계림 판관(鷄林判官)이 되었다. 무성군 진예남의 후손인 진재해는 1713년(숙종 39) 어용모화도감의 화공이 되어 숙종의 전신을 그려 상을 받았고,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는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했으며 후에 첨절제사를 역임하였다. 이 밖에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진동익, 진동석은 독립운동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진학신과 더불어 명성을 날렸다.

인구수

1985년 조사
9,858명
2,392가구
2000년 조사
11,046명
3,475가구
2015년 조사
12,97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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