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경산김씨(慶山金氏)

유래

시조 : 김육화(金育和)

시조 김육화(金育和 : 초명은 김숙화)는 금자광록대부, 이부 상서(吏部尙書), 좌복야(左僕射 : 상서도성의 정2품 벼슬), 상장군(上將軍) 등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경산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 선산김씨(들성) 시조)의 10세손 김인궤(金仁軌)를 시조로 하는 설도 있으며, 1320년(고려 충숙왕 7년) 찬성사(贊成事)를 지내고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진 김이(金怡 : 1265∼1327)를 시조로 기록하는 문헌도 있다.

-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김한(金翰)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인물

김육화의 아들 김중전(金仲全)이 고려시대에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문하부의 정2품 벼슬)를 역임하였고, 김중전의 아들 김경선(金敬先)은 예의판서(禮儀判書 : 예의사의 정3품 으뜸 벼슬)를 지냈으며, 손자 김영수(金英秀)는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문하시랑(門下侍郞 : 고려 때 중서문하성의 종1품 벼슬)에 이르렀다.

김영수의 아들 김익려(金益礪)는 삼사 좌윤(三司左尹 : 전곡의 출납과 회계를 맡아보던 관청의 종3품 벼슬)을 지냈으며, 김익려의 손자 문정공(文貞公) 김용(金龍)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남쪽으로 향할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호종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었고, 사신으로 일본을 다녀와 호조 판서(戶曹判書)와 우의정(右議政)을 역임한 후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져서, 목사(牧使)를 지낸 아들 김약수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19世
배(培)위치 미표기
20世
락(樂)위치 미표기
21世
윤(潤)위치 미표기
22世
순(淳)위치 미표기
23世
진(振)위치 미표기
24世
종(鍾)위치 미표기

인구수

1985년 조사
5,159명
1,135가구
2000년 조사
7,550명
2,393가구
2015년 조사
55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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