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최준옹(崔俊邕)
시조 최준옹(崔俊邕)은 소벌도리의 25세손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공신 삼중대광 태사가 되었다.
최준옹의 증손자 최석(崔奭)이 1051년(문종 5)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를 지내고, 1087년(선종 4) 감수국사(監修國史)를 지내고 동주(현 철원)에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동주로 하였다. 철원최씨라고도 한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최준옹(崔俊邕)
시조 최준옹(崔俊邕)은 소벌도리의 25세손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공신 삼중대광 태사가 되었다.
최준옹의 증손자 최석(崔奭)이 1051년(문종 5)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를 지내고, 1087년(선종 4) 감수국사(監修國史)를 지내고 동주(현 철원)에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동주로 하였다. 철원최씨라고도 한다.
- 최유청(崔惟淸) : 최준옹의 6세손으로 고려 예종 때 집현전 대학사를 지냈다.
- 최당(崔讜) : 최유청의 아들로 고려 신종 때 문하평장사를 지냈다.
- 최선(崔詵) : 최유청의 아들로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
- 최영(崔瑩) : 고려 말기의 명장으로 최유청의 6세손이며 동원부원군 최원직(崔元直)의 아들이다. 그는 강직청렴한 명장이요 명재상으로서 왜구를 무찔러 전공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10여 차례에 걸친 왜구 소탕과 함께 수차례의 내란에 공을 세웠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李成桂)의 군사와 맞섰다가 결국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 최남선(崔南善) : 국학(國學)의 대가이다.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했다.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우리나라 신시(新詩)운동과 신문학 운동의 출발이다. 문학가, 역사가, 계몽운동가(啓蒙運動家)로 많은 업적을 남긴 그는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