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스캐너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수원최씨(水原崔氏)

유래

시조 : 최상저(崔尙翥)

수원 최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시조 최상저(崔尙翥)는 고려 예종 때 수주(水州 : 수원)의 호장(戶長)이다.

최상저는 김칠(金七)·최승규(崔承珪) 등과 함께 수주(水州)를 대표하는 존재이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최상저가 사냥 나갔다가 범에게 물려 죽자 그의 아들 열다섯 살배기 최루백(崔婁伯)이 범을 잡으려고 했다. 모친이 만류했지만 최루백은 부친의 원수를 어찌 갚지 않겠냐며 바로 도끼를 메고 범의 뒤를 밟아가니 범은 이미 배불리 먹고 누워 있었다.

최루백이 곧장 나아가, '네가 나의 부친을 잡아 먹었으니 나도 마땅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고 꾸짖었다. 이 말을 들은 범이 꼬리를 흔들며 엎드리자 도끼로 내려쳐 죽인 다음 배를 갈라 항아리에 범의 고기를 채워 개울가에 묻었다. 또 부친의 뼈와 살을 골라내어 그릇에 담아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장사지낸 후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侍墓)하였다.

최상저의 유허비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165-1에 있다.

최정(崔靖)을 시조로 하는 계통도 있다. 고려 때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냈으나 그의 선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최정의 고향이 수원이므로 본관을 수원으로 하였다.

인물

최루백(崔婁伯) : 1205년(희종 1년)에 태어난 최루백은 과거에 급제한 후 의종 급제하여 의종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에 승진하였다. 1153년(의종 7)에는 기거사인으로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가서 용흥절(龍興節)을 축하하였다. 뒤에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20世
처(處)위치 미표기
20世
종(宗)위치 미표기
21世
천(天)위치 미표기
21世
붕(鵬)위치 미표기
22世
남(南)위치 미표기
22世
준(俊)위치 미표기
23世
용(龍)위치 미표기
23世
제(?)위치 미표기
24世
석(錫)위치 미표기
24世
학(學)위치 미표기
25世
활(活)위치 미표기
25世
시(時)위치 미표기
26世
진(鎭)위치 미표기

인구수

1985년 조사
15,442명
3,558가구
2000년 조사
13,156명
3,976가구
2015년 조사
14,687명

같은 성씨의 다른 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