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한예(韓銳)
시조 한예(韓銳)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1206년(고려 희종 2년)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로 곡산부원군에 봉해 졌으며 후손들이 곡산에 살면서 본관을 곡산으로 하였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한예(韓銳)
시조 한예(韓銳)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1206년(고려 희종 2년)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로 곡산부원군에 봉해 졌으며 후손들이 곡산에 살면서 본관을 곡산으로 하였다.
시조 한예(韓銳)의 아들 한희(韓禧)가 고려에서 밀직부사(蜜直副使,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 등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 3품 벼슬)를 지냈으며, 손자 한익(韓翊)은 판도판서(版圖判書, 판도사의 으뜸 벼슬)에 올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한진(韓瑨, 익의 아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조선 태조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한옹(韓雍)은 한예(韓銳)의 6세손으로 능성 군수(綾城郡守) 등을 거처 태종 때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瓚成, 임금을 보좌하며 정무를 총괄하던 행정부 최고 기관의 정 1품 벼슬)에 이르렀다.
한편 학자로 이름난 한여유(韓汝愈))는 일찌기 서경덕(徐敬德), 송시열(宋時烈)에게 학문을 배워 상수(象數), 병진(兵陳), 성률(聲律) 등에 능통했고, 한치상(韓致相)의 아들 한이원(韓以原)은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경사(經史)와 시(詩), 역학(易學) 등에 뛰어났다. 그외 부윤(府尹)을 역임한 한덕후(韓德厚)와 학자 한시유(韓是愈), 한문건(韓文健) 등이 명성을 날림으로써 가문을 더욱 빛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