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홍지경(洪之慶)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하여 국학직학에 이르렀다. 그가 풍산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풍산으로 하였다.
- 묘소는 경북 안동군 풍산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홍지경(洪之慶)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하여 국학직학에 이르렀다. 그가 풍산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풍산으로 하였다.
- 묘소는 경북 안동군 풍산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
- 홍주원(柱元) : 선조의 부마이다.
- 홍만용(萬容) : 홍주원의 큰아들.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 홍현보(鉉輔) : 홍만용의 손자. 영조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 홍봉한(鳳漢), 홍인한(麟漢)형제 : 현보의 아들이다. 홍봉한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다. 이들 두 형제는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궁중참변의 격동을 맞아 형 봉한은 영조의 실덕(失德)을 힐책하는 시파로, 아우 인환(좌의정)은 사도세자의 실덕을 규탄하는 벽파로 갈리어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를 보호한 사람이 홍국영(國榮)인데, 그는 홍주원의 둘째 아들인 홍만형(萬衡)의 5대손으로 정조가 즉위하자 도승지와 숙위대장이 되어 세도정치를 휘두르지만 4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 홍양호(良浩) : 당대의 뛰어난 학자요 문장가로 '영조실록",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의 석학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고증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764년(영조 40)에는 일본에서 벚나무를 들여와 서울 우이동에 심어 경승지를 이루게 하였다.
- 홍만선(萬選) : 숙종 때의 실학자로 실학사상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는 후일 실학 연구에 커다란 바탕이 되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