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황석주(黃石柱)
시조 황석주(黃石柱)는 도시조인 황낙(黃洛)의 후손이며, 고려에서 벼슬이 상주국에 이른 시조 황석주를 1세조로 하고 있다. 상주황씨족보(尙州黃氏族譜)에 의하면 황석주(黃石柱)의 4대손 황을구(黃乙耉)가 상주에 정착하여 살면서부터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황석주(黃石柱)
시조 황석주(黃石柱)는 도시조인 황낙(黃洛)의 후손이며, 고려에서 벼슬이 상주국에 이른 시조 황석주를 1세조로 하고 있다. 상주황씨족보(尙州黃氏族譜)에 의하면 황석주(黃石柱)의 4대손 황을구(黃乙耉)가 상주에 정착하여 살면서부터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 무과에 장원 급제하고 양관 대제학을 거쳐 의정부 좌찬성에 오른 황효원(黃孝源)이 좌익 및 좌리공신에 책록되어 상상부원군에 봉해졌고 후에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므로 크게 명성을 떨쳐 가문을 중흥시켰다.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황세근(黃世懃)의 아들 황우한(黃佑漢)과 호조참판에 추증된 황이환(黃以煥)의 아들 황징(黃徵)이 있다. 황우한(黃佑漢)은 선조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의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으며, 황징(黃徵)은 현종 때 생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호조 정랑을 거쳐 훈련원부정·부호군·승지를 지냈고 전라좌수 수군절도사르 역임하였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