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노구(盧坵)
시조 노구(盧坵)는 도시조 노수(盧穗)의 넷째 아들로 고려에서 공을 세워 장연백(長淵伯)에 봉해졌다.
노구의 아들 노안필(盧安弼)은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거란(契丹)의 침입을 토벌하여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장강군(長康君, 장연의 옛 지명)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장연으로 하게 되었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노구(盧坵)
시조 노구(盧坵)는 도시조 노수(盧穗)의 넷째 아들로 고려에서 공을 세워 장연백(長淵伯)에 봉해졌다.
노구의 아들 노안필(盧安弼)은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거란(契丹)의 침입을 토벌하여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장강군(長康君, 장연의 옛 지명)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장연으로 하게 되었다.
7세손 노단(盧旦, 초명은 노조)이 고려 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시어사(侍御史)·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예부 상서(禮部尙書)와 좌복야, 우복야를 지내고 참지정사(參支政事)에 이르렀고, 최충(崔沖)과 함께 사숙(私熟)을 열어 후진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했는데 이를 12공도(公徒)의 하나인 광헌공도(匡憲公徒)라 하였다.
그의 후손에서 고려 공민왕 때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정승(政丞)을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 國崇祿大夫)에 오른 노명신(盧命臣)은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이 모두 현달(縣達)하여 장연 노씨의 3대 산맥을 이 루었다.
노명신의 맏아들 노국주(盧國柱)는 충목왕때 이부 판사(吏部判事)를 지내고 창녕(昌寧) 월미촌(月未村)으로 이주하였으며, 둘째 노태주(盧台柱)는 호군(護軍)을 역임했다. 셋째 아들 노성주(盧誠柱)는 삼한삼중대광보국벽상좌명공신(三 韓三重大匡輔國壁上佐命功臣)으로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올라 크게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아들 노찬(盧贊)이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과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를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했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