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단간목(段干木)
시조 단간목(段干木)은 모양부(牟梁部, 지금의 경주)사람으로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분이다. 단간목(段干木)의 아들 단홍인(段弘仁)이 고려 충숙왕 때 무과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는 기록뿐, 3세와 4세는 알려진 바 없고 5세 단유인(段由仁)이 조선 성종 때 맹산현감(孟山縣監)을 지냄으로써 그를 중조로 삼았다고 한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단간목(段干木)
시조 단간목(段干木)은 모양부(牟梁部, 지금의 경주)사람으로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분이다. 단간목(段干木)의 아들 단홍인(段弘仁)이 고려 충숙왕 때 무과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는 기록뿐, 3세와 4세는 알려진 바 없고 5세 단유인(段由仁)이 조선 성종 때 맹산현감(孟山縣監)을 지냄으로써 그를 중조로 삼았다고 한다.
중시조인 단유인(段由仁)이 성종 때에 승사랑(承仕郞)과 맹산현감(孟山縣監)을 지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석학(碩學) 화담 서경덕과 동문수학을 할만큼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리고 9세손인 단석철(段碩哲)이 학덕이 높았다는 기록과 그의 아우인 단효철(段孝哲)이 숙종 때 무과에 올랐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백제(百濟)시대로 올라가면 15대 무녕왕(武寧王) 때 단양재(段楊再)가 오경박사(五經博士)로서 일본에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