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당(李唐)
시조는 이당(李唐)은 고려 말에 국자감 생원시에 합격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에 증직되었다.
"흥지승람(興地勝覽)" 경기도 광주인물편에 의하면 그는 원래 광주출신 관리로 국자(國子) 생원(生員)에 올라 행실이 어질었으며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고 한다.
이당의 다섯 아들 중 둘째인 고려 말의 학자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높은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의 집이 있던 고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 서울의 둔촌동이 되었다. 광주이씨는 이집을 1세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이씨 계파간에 시조에 대한 의견이 달라 우탄공파는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자성은 칠원에서 살아온 집안의 후손으로 신라 내물왕 때의 내사령(內史令)으로 서기935년 신라 패망시에 이자성은 항복을 거부하고 고려 왕건에 끝까지 저항하였다. 이같은 이유로 준안(准安. 현 경기도 광주)으로 강제이주시켜 역리(驛吏)로 삼았고, 그래서 광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물왕 부터 고려 때 까지 살았다면 600년간 살았다는 것이되므로 설득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