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관중(李管仲)
시조 이관중(李管仲)은 금릉(金陵 : 김포의 옛이름)에서 여러대에 걸쳐 살아온 사족(士族)으로 조선시대에 기자릉(箕子陵) 참봉(參奉)을 거쳐 벼슬이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병진보(丙辰普) 서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김포에서 평안남도 성천(成川)군 현봉(玄峰)으로 피난, 정착하여 살면서 김포이씨로 하였다고 한다.
-묘소는 성천군 성천면 각후동에 있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이관중(李管仲)
시조 이관중(李管仲)은 금릉(金陵 : 김포의 옛이름)에서 여러대에 걸쳐 살아온 사족(士族)으로 조선시대에 기자릉(箕子陵) 참봉(參奉)을 거쳐 벼슬이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병진보(丙辰普) 서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김포에서 평안남도 성천(成川)군 현봉(玄峰)으로 피난, 정착하여 살면서 김포이씨로 하였다고 한다.
-묘소는 성천군 성천면 각후동에 있다.
시조 이관중의 아들 이운선(雲善)은 한성판윤(漢性判尹)을 지냈고,
손자 이창(李倡)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금릉부원군(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11세손 이경화(景華)는 조선 정조 때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