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연계(李連桂)
대흥이씨는 전주이씨 22세에서 분관하였다.
시조 이연계(李連桂)는 고려때 관직이 예문관 제학(禮文館提學)을 지내고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는데 태조 이성계가 용흥(龍興, 현재의 함흥)으로 가려는 것을 만류한 죄로 예천으로 유배되었다가 태종 3년에 풀려나와 대흥군(大興君)에 봉해졌다.
전주이씨로 복원하라는 하교도 있었으나 이에 불응하고 본관을 대흥으로 하였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이연계(李連桂)
대흥이씨는 전주이씨 22세에서 분관하였다.
시조 이연계(李連桂)는 고려때 관직이 예문관 제학(禮文館提學)을 지내고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는데 태조 이성계가 용흥(龍興, 현재의 함흥)으로 가려는 것을 만류한 죄로 예천으로 유배되었다가 태종 3년에 풀려나와 대흥군(大興君)에 봉해졌다.
전주이씨로 복원하라는 하교도 있었으나 이에 불응하고 본관을 대흥으로 하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두루 관직자를 배출한 대흥이씨가문은 그 대표적 인물로 고려시대에 부사(府使)를 지낸 이손귀(李孫貴)를 비롯, 호군(護軍) 이종수(李從樹), 이종송(李從松),찰방(察訪) 이문규(李文奎), 대사성(大司成) 이맹선(李孟善), 대사간(大司諫) 이흥춘(李興春), 이손현(李孫賢)은 좌찬성(左贊成)을 지냈으며,
대사성(大司成)의 관직에 오른 이석화(李碩華), 참판(參判) 이규영(李圭永), 전서(典書) 이세정(李世禎), 참찬(參贊) 이효건(李孝健), 목사(牧使) 이흥발(李興發), 대제학(大提學) 이진균(李辰龜)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 판관(判官)을 지낸 이운용(李雲龍), 절제사(節制使) 이즙(李楫), 감찰(監察) 이인종(李仁宗), 참판(參判) 이태인(李泰仁), 부정(副正) 이중춘(李重春), 참의(參議) 이정(李淨), 첨정(僉正) 이치선(李致善), 도정(都正)을 지낸 이의재(李儀在), 판서(判書) 이종오(李種吾)와 이기, 대사성(大司成) 이석화(李碩華) 등이 가문을 빛낸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