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문하시중을 지낸 이위(李瑋)는 문과에 급제, 선종때 호부 원외랑(戶部員外郞)을 지냈으며 숙종때
서북면 행영 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가 되어 여진족을 정벌했다. 1109년 추밀원사(樞密院使)를 거쳐 그후 참지정사(參知政事),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어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가 되고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수태보(守太保),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에 올라 태전(太傳), 계양군개국백(桂陽郡開國伯)에 봉해졌다. 1122년 계양공(桂陽公)에 봉해지고 그후 중서령(中書令)으로 진정공신(鎭定功臣)의 호를 받았다.
조선시대 이조판서(吏曺判書)를 지낸 이세화(李世華)는 1657년 생원(生員)으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장령(掌令)을 거쳐 황해도, 평안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왔다. 그후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호조판서(戶曺判書)에 이어 판의금부사 겸 지경연사(判義禁府事兼知經筵事)를 지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공조(工曺), 형조(刑曺), 병조(兵曺), 이조(吏曺)의 판서(判書)를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가 되었으며,
이연제(吏延濟)는 1699년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정언(正言), 지평(持平), 사간(司諫) 등을 거쳐 1721년 홍주목사(洪州牧使)를 지내고 1723년 우승지(右承旨)로서 노론(老論) 축출에 가담했다. 한 때 노론의 집권으로 사직되었다가 영조때 경기도관찰사,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