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순유(李純由)
시조 이순유(李純由)는 동생 이돈유(李敦由)와 함께 신라 경순왕 때 벼슬하여 재상(宰相)에 올랐으나 신라가 망하자 마의태자(痲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나라를 구하려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이순유의 재주와 기량을 흠모하여 벼슬할 것을 권유했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고 하여 거절하고 이름까지도 이극신(李克臣)이라 고쳐 경산(京山. 성주의 옛 이름)으로 옮겨 살았다. 그 절의에 감복한 태조 왕건은 "나의 신하는 아니지만 나의 백성임에 틀림없다"하며 향직(鄕職)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고려 고종 때 시조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이 호장을 지내면서 덕망이 높았고 이장경의 손자 이승경(李承慶)이 원나라에 가서 벼슬할 때 공이 많아 원나라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였으므로 처음에 농서이씨로 하였다.
이장경의 5아들 장남 밀직사사 이백년(李百年), 차남 참지정사 이천년(李千年), 삼남 낭장 이만년(李萬年), 사남 참찬 이억년(李億年), 오남 정당문학 이조년(李兆年)이 문과에 급제하고 가세가 번성해지자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에 따라 본관을 성주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