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수광(李秀匡)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송나라 태생으로 고려 문종때 송나라에서 귀화해왔다.
그가 고려에 온 유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당시 송과 빈번한 문화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사신으로가 화평관계를 맺는데 공을 세워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補國)으로 양성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양성으로 하였다.
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시조 : 이수광(李秀匡)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송나라 태생으로 고려 문종때 송나라에서 귀화해왔다.
그가 고려에 온 유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당시 송과 빈번한 문화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사신으로가 화평관계를 맺는데 공을 세워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補國)으로 양성군에 봉해지자 본관을 양성으로 하였다.
시조 이수광의 아들 이신정(李臣靖)은 이부상서에 오르고 손자 이원의(李元儀)는 승지, 증손 이영주(李英柱)는 상장군을 역임하였다. 이영주는 또 충렬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으며 더욱 튼튼하게 가문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아들 이천 또한 양성군에 봉해졌으며, 이천의 큰아들 이수방(李守邦)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인품과 재능이 영종의 눈에 띄어 직성사인(直省舍人)의 벼슬과 나해(那海)라는 이름을 받았다고한다. 그의 네아들도 모두 벼슬을 해 사람들은 "나해같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사나해(似那海)"라고 한것이 "사나이"란 말의 기원이 됐다고 후손들은 말한다.
조선시대 인물로는 세종때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발명가인 이순지(李純之)가 있다. 그는 판중추원사에까지 올랐고 세종의 명을 받아 김담, 장영실 등과 함께 역법을 연구했고, 천문학 서적을 편찬하기도 했다. 그는 산학, 천문, 풍수 등 자연과학의 대가였는데 김담과 함께 쓴 "칠정산내외편" 이 그중에도 유명하다.
또 성종때 학자로 이름을 날린 이승소를 들 수 있다. 그는 다방면에 조예가 깊어 예문관제학을 지낼 때 명황계감(明皇誡鑑)을 우리말로 번역했고 문집 "삼탄집(三灘集)"을 남겼다. 그는 당시 문장으로 일컫던 서거정과 어깨를 나란히 한 문인이었는데 특히 용모와 태도가 단아청정해 금옥군자(金玉君子)라고도 불렸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