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이씨에는 시조를 달리하는 3파가 있다.
교위공파(校尉公派)는 고려 때에 인용교위(仁勇校尉)를 지낸 이인덕(李仁德)을 시조로 한다. 고려 때는 황려(黃驪)로 조선 때는 여흥(驪興), 여주로 사용하였으며 간혹 본관을 영의(永義)로 사용하는 지파도 있었다.
문순공파(文順公派)는 중윤(中尹)를 지낸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이규보(李奎報)를 중시조로 한다. 하음(河陰. 지금의 강화)을 본관으로 사용한 지파가 있었다.
경주파(慶州派)는 고려때의 향공진사(鄕貢進士) 이세정(李世貞)을 시조로 한다. 여강(驪江)을 본관으로 사용해 왔었다.
3파 여주이씨의 시조들은 다같이 고려 중엽 부터 경기도 여주에 자리잡아 세력을 떨치던 호족들이며, 후손들은 시조는 달리하면서도 오랜 예전부터 서로 동족으로 알아 한 뿌리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해 조선시대 부터 대동보를 함께 만들어왔다.
경기도 여주를 근거지로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은 여주를 본관으로 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