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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영천이씨(寧川李氏)

유래

시조 : 이능간(李凌幹)

시조 이능간(李凌幹)의 호는 송헌(松軒)으로 남원에서 나서 1320년(고려 충숙왕 7년) 반전별감으로 원나라에서 왕을 토번(吐蕃)으로 유배시킬 때 왕을 호위하였고 왕이 죽자 재궁(梓宮)을 모시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1326년(충숙왕 13년) 지사사우상시(知司事右常侍)로 원나라가 고려를 없애고 성(省)을 두겠다는 조치가 있자 이를 중지시켜 면좌당(免左堂)이라는 액호(額號)를 사림(士林)으로부터 받았다.

1332년(충혜왕 2년) 문하시중으로 있으면서 조적의 난을 평정하여 1등공신이 되고 영천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본관을 영천으로 하였다.

인물

조선시대에 계중엽(季重燁)과 이부춘(李富春) 그리고 이상규(李尙奎)와 이재행, 이재흠(李在欽)과 이재성(李在誠) 등은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으며 이덕근(李德根)과 이복겸(李福謙)은 통정대부에 추증 되었다.

이탕휴(李湯休)는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는데 현재 두문동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이탕휴의 아들 이분(李芬)은 조선시대에 벼슬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현금(玄琴)을 즐겨 곡을 지었다고 한다.

인구수

1985년 조사
95,473명
23,290가구
2000년 조사
116,970명
36,781가구
2015년 조사
135,6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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