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문한(李文漢)
시조 이문한(李文漢)은 알천 양산촌의 촌장 알평(경주이씨)의 후손으로 고려초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이문한의 6세손 이극인(李克仁)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영양(永陽. 영천의 다른이름)군에 봉해진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로 하는 파와 고려 때 영동정(領同正)을 지낸 이박를 1세조로 하는 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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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이문한(李文漢)
시조 이문한(李文漢)은 알천 양산촌의 촌장 알평(경주이씨)의 후손으로 고려초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이문한의 6세손 이극인(李克仁)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영양(永陽. 영천의 다른이름)군에 봉해진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로 하는 파와 고려 때 영동정(領同正)을 지낸 이박를 1세조로 하는 파가 있다.
조선시대에서 39명의 문과 급제자와 많은 명신과 학자를 배출하였다.
이종검(李宗儉)은 직제학(直提學) 이안직(李安直)의 아들로 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翰林), 직제학(直提學), 대사간(大司諫)을 지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조정에서 아호(雅號)를 효우당(孝友堂)으로 내렸다고 한다.
이이응(李吏膺)은 일찌기 문과에 급제하여 1400년 상장군으로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영양군에 봉해졌으며 좌부대언(左副代言)을 거쳐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예조판서(禮曺判書), 호조판서(戶曺判書),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병조판서(兵曺判書)를 지냈다. 태종의 척불정책(斥佛政策)을 도왔고, 1403년 우대언(右代言)으로 계미자주조(癸未字鑄造)에 공이컸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는 영천이씨가 배출한 당대의 명신이며 대표적 학자였다. 그는 현감(縣監) 이흠(李欽)의 아들로서 연산군 4년 문과에 급제하고 정언(正言), 지평(持平) 등을 거쳐 여러 고을의 목사(牧使), 부사(府使) 등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명망이 높았으며 뒤에 부제학(副提學), 호조참판(戶曺參判),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에 이르러 청백리에도 녹선되었다. 그는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농암가(聾巖歌)", "춘민곡(春珉曲)" 등의 시조와 "어부가(魚父歌)"를 개작(改作)했고 "농암문집(聾巖文集)"을 남겼다.
그의 아들 매암(梅巖) 이숙량(李淑梁)은 이퇴계(李退溪) 문하의 성리학자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