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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예안이씨(禮安李氏)

유래

시조 : 이혼(李混)

시조 이혼(李混)은 고려 태조 때 삼한개국익찬공신(三韓開國翊贊功臣)에 오른 전의이씨 시조 이도(李棹)의 7세손 이천(李仟)의 3아들 중 2째 아들이다. 이혼은 고려 원종 때 등제하여 첨의정승(僉議政丞)에 이르러 예안백(禮安伯) 에 봉해졌다.

이혼의 손자 이익(李翊)이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으로 예안군에 봉해지면서 전의이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예안으로 했다.

-묘소는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에 있으며 매년 3월과 10월에 향사한다.

인물

6세손인 이천은 조선시대의 인물로서 1402년 무과에 급제, 충청도병마절도사, 공조참판을 지냈고,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어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에 공헌했다. 그는 1438년 호조판서가 되어 과학발전에 공헌하였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이르러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훤은 1525년 사마시에 합격, 대사간(大司諫),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이조참판, 형조판서에 이르렀고 1564년에 좌의정이 되었는데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선조때의 이공(李珙)은 157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을 사퇴, 학문에만 정진했고,

이경용(李慶龍)은 인조 때 병마절제사를 지냈으며 이경정(李慶禎)은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이유장(李惟樟)은 1660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익찬(翊贊)을 지냈는데, 송나라의 여러 서적과 주자의 예론(禮論), 이황의 주장 등을 절충하여 독자적인 이론을 수립하였다.

이간(李柬)은 숙종때의 인물로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인물동성론(人物同性論)을 학문의 근본으로 하였고, 그의 학설을 지지하는 추종자들이 1파를 이루고 각론을 형성하였다.

이천본(李天本)은 고종때에 효성으로 천거되어 조정에서 천심효자(天心孝子)라 칭하고 포상하였으며, 이용덕(李用悳), 이식(李埴) 등도 효성이 지극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구한말의 이준영(李準永)은 삼봉산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옥사했다.

항렬자

항렬자(行列字)는 같은 핏줄이 세대마다 이름에 함께 쓰기로 약속한 돌림자예요. 아래에서 자기 세대를 찾으면, 조상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가 보입니다.

○는 돌림자 이외의 글자 자리예요. ‘○한’처럼 ○가 앞에 있으면 이름은 ‘OO한’ — 돌림자가 뒤에 붙고, ‘한○’처럼 ○가 뒤에 있으면 ‘한OO’처럼 돌림자가 앞에 붙습니다. ○가 없는 항렬자는 원문에 위치 표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世(세)는 시조로부터의 세대 번호이고, 흔히 쓰는 代(대)는 世보다 1 작습니다 — 27世손은 26代손.

25世
○교(敎)
26世
호(鎬)○
27世
○영(泳)
28世
종(種)○
29世
○묵(默)
30世
규(奎)○
31世
○재(宰)
32世
운(雲)○
33世
○래(來)
34世
성(性)○
35世
○원(遠)
36世
석(錫)○
37世
○우(雨)
38世
영(榮)○
39世
○용(容)
40世
기(基)○

인구수

1985년 조사
11,284명
2,724가구
2000년 조사
14,356명
4,492가구
2015년 조사
17,74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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