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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씨의 시조와 본관 유래를 한 번에 확인

온양이씨(溫陽李氏)

유래

시조 : 이흥서(李興瑞)

시조 이흥서(李興瑞)는 1591년(조선 선조 24년)에 옥천군수가 되어 재임중 임진왜란을 당하여 항전하다 순국하였으며 며칠 뒤 부인도 병사했다. 그래서 생후 6개월 된 그의 아들 이해(李海)는 외가에서 자라게 되어 선친 이전의 선대를 모르고 죽었다. 손자 이만립(李萬立)의 대에 이르러 난중일기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은 알게 되었으나 역시 선대는 알 수가 없어 이흥서(李興瑞)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온양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묘소는 충남 옥천군 옥천읍 대천리에있다.

인물

온양이씨는 조선시대 동안에 많은 관직자는 배출시키지 못했으나 많은 효자를 낳았으며 굳은 절개를 가지고 불의에 굽히지 않는 지조있는 선비를 많이 배출시켰다.

조선 때 이원배(李元培)는 효성이 지극하여 순종으로부터 "온양이씨 계효지비(繼孝之碑)" 란 어필을 하사받아 어필각(御筆閣)이 건립되었다.

이태귀(李泰貴)는 숙종 때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넣어 4번이나 살아나게 했고 3년거상을 지극하게 했다.

경응선(京應善)은 순종이 별세하자 시종관(侍從官)으로 3개월을 대궐에서 보냈고, 그후 항일운동으로 일생을 보냈다.

그리고 이경선(李景善)은 공익사업에 헌신하고 한일합방 후에는 지하에서 구국운동을 계속하였고 3.1운동에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인구수

1985년 조사
2,475명
525가구
2000년 조사
3,002명
856가구
2015년 조사
1,83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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