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양식(李陽植)
시조 이양식(李陽植)은 이알평(閼平)의 48세손으로 고려시대에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아들 이순우(李純祐)는 의종 때 문과에 장원, 한림학사를 지냈으며, 경주에서 우계(강릉 속현)로 이사하였다.
이양식(李陽植)의 5세손 이구(李球)에 이르러 경주이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우계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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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이양식(李陽植)
시조 이양식(李陽植)은 이알평(閼平)의 48세손으로 고려시대에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아들 이순우(李純祐)는 의종 때 문과에 장원, 한림학사를 지냈으며, 경주에서 우계(강릉 속현)로 이사하였다.
이양식(李陽植)의 5세손 이구(李球)에 이르러 경주이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우계로 하였다.
5세손인 이구는 고려시대에 예빈승동정(禮賓丞同正)을 지냈고, 이전은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 참판을 역임하였으며, 이성헌(李成憲)은 찰방(察訪)을 지냈다. 그리고, 이명남(李命男)은 예조참의를 지냈고, 이령은 수찬(修撰), 이경익(李慶益)은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이경제(李慶濟)는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의 이복남(李福男)은 일찌기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 나주판관을 거쳐 그후 전라방어사, 충청조방장, 남원부사,전라도병마절도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다시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어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후에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남원의 충렬사에 제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