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 이우칭(李禹偁)
시조 이우칭(李禹偁)은 경주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7세손으로 고려 초-중기에 보조공신(補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후 황해도 재령을 녹읍(祿邑)으로 받고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경주이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재령으로 하였다.
- 시조의 묘소는 황해도 재령군 서어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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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이우칭(李禹偁)
시조 이우칭(李禹偁)은 경주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7세손으로 고려 초-중기에 보조공신(補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후 황해도 재령을 녹읍(祿邑)으로 받고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경주이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재령으로 하였다.
- 시조의 묘소는 황해도 재령군 서어산에 있다.
고려시대에 공부상서 이원영(李元英), 영동정(令同正) 이근인(李根仁), 상장군 이소봉(李小鳳)등으로 대를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이운용(李雲龍)은 무과에 올라 옥포만호로 임진왜란을 맞아 경상수군(원균)과 전라수군(이순신)이 처음으로 합동작을 펴서 옥포대첩을 거두는데 선봉장이 되신후 임진왜란후에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고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올라 식성군(息城君)에 봉해졌다. 또한 1607년(선조 40년) 북쪽 오랑캐들이 침입하자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이를 진압했고,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또한 이숙은 광해군 때 군자감판관을 지냈고 이현일(李玄逸)은 숙종 때 공조참의, 예조참판,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올라 가문의 명성을 높였다.
이홍훈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를 도와 창령 화왕산성(火旺山城) 등 지에서 적을 물리치고 큰 공을 세웠다.
이정(李瀞)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의병을 모집하여 진해, 창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후 의령현감,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뒤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이재(李栽)는 학자로서 1713년(숙종 39년)에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를 지어 간행했고 이휘일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지만 부임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