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안이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파가 있다.
충원공파(忠元公派)의 시조 이양길(李陽吉)의 시호는 충원(忠元)으로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 검교시랑, 예빈사동정(禮賓寺同正)을 역임하였으며 이때 왕에게 직간한 것이 화가되어 제주판관으로 내려갔다가 공민왕 5년 10월 순절하여 1등공신에 녹훈되고 청안군에 봉해졌다.
충간공파(忠簡公派)의 시조 이한번(李漢蕃)의 시호는 충간(忠簡)으로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올라 한림학사와 영광군사(靈光郡事)를 거쳐 국사원(國史院) 검열관(檢閱官)을 지낸 뒤 1363년(공민왕 7년) 홍건적을 막은 공으로 초성보리공신 삼중대광에 책록되고 청안백에 봉해졌다.
이 두파는 예전에 시조를 이학년(李鶴年)으로 하였으나 최근에 여러가지 증거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서 이를 수정하였다.